카테고리 없음2018. 6. 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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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때, 연애나 쇼핑에 있어서 후회나 미련 같은 건 남기지 않는 편이다. 넘치거나 부족한 것 역시 그 당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수긍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인생엔 항상 변수가 있고, 지푸라기처럼 흔들리는 마음도 잦다. 십 년도 더 지난 과거, 그의 은퇴가 현실이 된 시점부터 더 사들이지 못한 걸 나라 잃은 백성처럼 아쉬워했다. 비록 남들 눈엔 세월이 몇 겹씩 묻어 낡아 헤진 누더기처럼 보이더라도 더 갖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한결 같았다.

Posted by shinjunho
카테고리 없음2018. 6. 8. 00:13

불과 몇 년전까지 치수가 크고, 맞지 않아 옷장 안에 방치해 둔 <폴로랄프로렌>의 스트라이프 셔츠들이 다시 좋아진다. 엄마 아빠가 나무랄 만큼 크게 옷 입는 방식을 즐기던 유년시절과 지금 시대의 유행이 묘하게 만나 누구나 아는 베이직한 기호를 다시금 꺼내 입게 만든다. 마치 유명한 시인의 오래된 시집에서 발췌한 시의 한 구절처럼... 힘들고 긴 무더위를 지나 선선한 바람과 함께 다가오는 계절 가을엔 팔이 거칠게 잘려나간 좋아하는 상아색 라프시몬스의 후드 파카 안에 질리도록 입고 다닐 셔츠다.


Posted by shinjunho
카테고리 없음2018. 6. 8. 00:09

갈수록 신상(新商)이란 말처럼 새로 나온 것을 경배하는 말에 대해 경계하게 되는 요즘이다. 사실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신제품에 강하게 매료되어 무언가를 사야 한다고 느껴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당장 즐겨 신는 운동화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물론 쏟아지는 최신컬렉션이나 한정판으로 나오는 제품들은 많이 본다. 그리고 심지어 그 안에서 특정 디자이너의 사고 자체에 연신 감탄하는 일도 잦다. 하지만 '이건 반드시 사야 한다고!' 단호해질 만큼 욕구를 느낀 기억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오히려 나에겐 감탄이 소비로 곧잘 이어지던 과거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시대와 시절에 좀 더 강한 여운이 있다. 사족이 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제품을 사서신고 다닌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까진 신고 외출할 때 기분이 그렇게나 좋다. 도톰한 고무 타이어 같은 검은색 운동화에 하늘색과 주황색으로 된 플라스틱 구조물이 성가시게 달린 이 신발은 아디다스와 라프시몬스의 협역으로 지난 2015년에 출시한 <RESPONSETRAIL> 제품이다. 좋아하는 헬무트랑의 오래된 청바지랑도 잘 어울리고, 위에서 신발 신은 모습을 내려다볼 때 뭔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인생에서 물건을 살려면 어떻게든 돈이 든다. 최첨단시대에도 이러한 자본 논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순간에 촉매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제품들이 무조건 자본 논리에 상응하는 가치로 화답하진 않지만 이러한 논리에 반하는 콧대 높은 디자이너의 독창성은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의 지갑을 열게 한다. 비상식적인 아름다움 그것은 패션이 다른 상업문화와 분리되는 유일한 독창성이고 매력이다. 앞으로도 인생에 어떤 부분에선 그런 걸 본능적으로 신뢰하며 살고 싶다.



Posted by shinjunho